조희대 대법원장이 대통령실과 사전 합의 없이 대법관 후보 2명을 서면으로 제청하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헌법 104조와 법원조직법 어디에도 대통령과 사전 합의를 제청의 조건으로 둔 규정은 없어, 사전 협의는 법적 의무가 아니라 오랜 관행이다. 다만 임명까지 가려면 국회 동의 절차가 남아 있어, 이번 충돌은 제청을 되돌리기보다 국회 표결 단계의 변수로 옮겨갈 가능성이 크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대통령실과 사전에 후보를 맞추는 절차 없이 대법관 후보 2명을 서면으로 제청했다. 노태악 대법관의 후임으로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를, 이흥구 대법관의 후임으로 김성수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올렸다.
관례는 달랐다. 그동안은 대통령실과 대법원이 미리 후보를 조율해 합의한 뒤, 대법원장이 대통령을 직접 만나 제청하는 방식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그 대면 절차 없이 서면으로 전달됐다. 법원행정처는 "청와대가 대통령을 만날 기회를 주지 않아 민정수석실과 협의한 뒤 서면으로 제청했다"며 "협의는 했지만 합의에는 이르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KATRIN BOLOVTSOVA
헌법 104조는 대법관 임명 권한을 세 곳에 나눠놨다.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조항이다. 후보를 고르는 제청권은 대법원장에게, 동의권은 국회에, 최종 임명권은 대통령에게 있다. 서로 견제하도록 권한을 분산한 설계다.
절차를 좀 더 뜯어보면, 법원조직법에 따라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제청 대상의 3배수 이상을 추천하고 대법원장이 이를 존중해 후보를 정한다. 여기까지 어디에도 대통령과 미리 후보를 합의하라는 규정은 없다.
핵심은 이 지점이다. 대통령과의 사전 협의는 법에 적힌 절차가 아니라 오래 이어진 관행이다. 제청권이 헌법상 대법원장의 몫인 이상, 협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제청이 무효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법조계에서는 반대 방향의 우려를 제기한다. "합의되지 않은 후보는 제청할 수 없다"는 관행이 굳어지면, 대법원장의 제청권이 사실상 대통령의 사전 동의에 종속돼 유명무실해진다는 것이다. 권한을 셋으로 나눈 헌법 취지와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이는 서면이냐 대면이냐 하는 형식 문제를 넘어서는 쟁점이다.
제청 자체는 대법원장 권한으로 이뤄졌으니 그 효력이 갈등으로 사라지지는 않는다. 다만 대법관이 실제로 임명되기까지는 관문이 하나 더 있다. 국회 동의다. 인사청문회를 거쳐 본회의 표결에서 과반의 동의를 얻어야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다.
그래서 이번 충돌은 제청을 되돌리는 문제라기보다, 다음 단계인 국회로 무대를 옮길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은 협의 없는 제청을 문제 삼았고, 국민의힘은 제청이 대법원장의 고유 권한이라며 맞섰다. 표결 구도에 따라 후보 동의 여부가 갈릴 수 있다.
한 가지는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 국회 동의를 얻은 뒤 대통령이 임명을 미루거나 거부할 수 있는지, 즉 임명권이 형식적 절차인지 실질적 재량인지는 헌법 해석상 논쟁이 남아 있다. 이 부분은 확정된 결론이 아니라 앞으로 다퉈질 영역으로 보는 편이 정확하다.
정리하면, 이번 사안은 '협의 없이 제청해도 되느냐'라는 절차의 적법성과, '그렇게 굳어져도 되느냐'라는 관행의 방향이 뒤섞여 있다. 앞의 질문은 법으로 답이 비교적 분명하고, 뒤의 질문은 정치와 헌법 해석이 함께 걸린 문제다. 후임 인선이 길어지면 대법원의 사건 심리에도 부담이 되는 만큼, 앞으로 국회 청문과 표결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지켜보는 것이 실제 향방을 가늠하는 지점이다.